행복한 숨쉬기 (돼지에서 독수리로)

여의도 수련원 김성신

저는 42세 게으른 당뇨환자입니다. 30세 무렵부터 지지부진 관리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다 작년 여름 눈 망막산동 검진 후 짧은 통고를 받았습니다. “합병증이 시작되었습니다. 3개월 후에 재검 받으세요.” 그동안 많은 우려의 말을 병원에서 들어왔지만 이번처럼 충격적이진 않았었습니다. 시력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소득 없이 분주했던 일상을 후회하며 운동 생활화를 다시 실천하기 위해 집 근처의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핫요가를 시작했습니다.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환경에서 발레로 다져진 20대 강사님의 자세를 보며 열심히 땀 흘리며 따라 했습니다. 더운 물이 나오는 샤워시설, 요가동작 중간에 수시로 물 마시기, 여자들만 있는 편안함에 나름대로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동작을 하며 호흡을 하다 보니 그 더운 공기가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호흡을 강조하는 요가임에도 뭔가 늘 헛헛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끝나기 한 10분쯤 전에 빠르고 강한 복식호흡을 약 5분정도 반복하는데 이 호흡이 너무나 짧고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한 10년 전쯤 친구의 추천으로 잠시 다녔던 국선도 생각이 났습니다. 너무 새파란 도복, 단조로운 동작,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호흡법, 누워서 호흡하다 보면 뭔지 모를 공간 속에 붕 떠있는 듯한 느낌, 설명이 거의 없는 사범님 등등의 이유로 3개월 만에 그만두긴 했지만 덥지 않은 공간에서 요가와 비슷하게 몸을 풀며 호흡을 길게 할 수 있는 곳은 도장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장을 검색해보니 여의도에 두 군데가 있었습니다. 그 중 일을 마치고도 갈 수 있는 저녁 시간대가 있는 곳으로 결정했습니다. 하얀 도복에 밝은 웃음으로 반겨주시는 원장님은 언제 뵌 적이 있던 분처럼 낯설지 않았습니다.

전에 운동을 할 땐 그저 당을 낮추는 것이 주목표였기 때문에 스트레칭보다는 걷거나 뛰어 땀을 내는데 집중했었습니다. 핫요가에서도 땀이 많이 나면 오늘 운동 잘했군하며 즐거워했었습니다. 그러나 국선도 수련은 주로 스트레칭과 호흡이라 땀이 많이 안 날 거라고 예상했으나 여기저기 단단히 굳어 있는 몸은 조금만 펴줘도 땀이 뚝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특히 수련 전의 준비운동인 척추를 펴준다는 등구르기 동작은 몸을 따뜻하게 만들고 전에 잘 안되던 쟁기자세까지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만점의 동작이었습니다. 수련동작은 얼핏 보기엔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한 동작 한 동작 제대로 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면 몸의 상하좌우, 겉과 안을 구석구석 풀어주는 신통한 동작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공동작과 함께 하는 단전호흡은 자주 불안해지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고 산소를 온몸 구석구석까지 보낸 듯한 개운한 기분이 들게 해주었습니다.

생고무를 늘리듯 천천히 늘리고 힘 빼고, 피가 도는 것을 느끼는 스트레칭의 고통을 즐기기 시작하게 되면서 자꾸만 아래를 향하는 시선, 틈만 나면 구부정해지는 등판, 왼쪽보다 더 굳은 오른쪽 골반, 부실한 발목, 우두둑 소리 나는 오른쪽 어깨 등등 부실덩어리인 몸이 미세하게 원래 자리를 찾아 자리 잡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수련 시작한지 4개월 정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몸이 아주 조금씩 늘어나면서 움츠렸던 몸속에 박혀 얼었던 마음도 함께 조금씩 녹아내림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들었던 단전호흡의 증상들이 제 몸에서도 문득문득 나타나고 있습니다. 괜히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단전에서 미약하나마 열기가 스멀스멀 느껴지기도 하고 호흡이 잘 된 날은 손바닥을 비빌 때 마른 장작에 불이 붙 듯합니다.

그 중 저에게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집중을 풀면 다시 입이 마르기는 하지만 행공 동작 시 단전호흡에 집중하면 물을 마시지 않아도 입속에 침이 고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병인 당뇨 혈당수치가 걷거나 뛸 때보다도 오히려 안정적으로 내려가 늘어만 갔던 약의 양을 1/3 정도 줄이게 된 것입니다. 허기도 훨씬 덜 느끼게 되어 식사량도 1/3을 줄이고 한 끼는 생식으로 대체하고 그러다 보니 4개월 전엔 꽉 끼던 바지가 헐렁해지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다시 받은 망막검사에서도 더 이상 진행되지는 않았다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심신의 변화를 실감하고 나니 부득이한 사정이 없으면 수련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떤 날엔 의식하지 못하고 했던 준비, 정리운동 동작이 생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와 이런 게 습관의 힘이라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세 시간마다 다리를 펴줘야 제대로 늘어난다는 원장님 말씀에 좌절하기도 했으나 산을 오르는 것처럼 정상을 향해 더디더라도 쉼없이 걷다보면 언젠가는 도착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새벽부터 밤까지 지도에 열과 성을 다하시는 원장님이 계십니다. 낭창거리는 버들가지 팔다리와 날개 접은 학의 풍모를 지니신 원장님은 잔주름은 자글자글하시지만 청년의 마음과 때론 어린 아이의 짖궂음으로 수련생들을 대하십니다. 수련의 작은 성취 경험을 빨리 느끼게 하시려는 마음에 성격이 살짝 급하신 것이 단점이지만 그동안 기웃거려본 여러 운동 프로그램의 어떤 사범님도 원장님처럼 친절, 정확, 그리고 될 때까지 맞춤형 지도를 해주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굳은 몸이 풀어지면 인생관이 바뀐다고 늘 각 잡힌 동작을 강조하시며 기를 불어넣어주시는 원장님과 같은 공간에서 성심껏 수련하는 다른 수련생님들의 기운으로 제 몸도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아직 수련의 맛을 모르는 남편에게 원장님 놀이를 하면서 원장님만의 즐거움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어디 숨을 곳이 없는 아담한 수련장에 원장님의 차분한 말씀과 하이톤의 웃음소리, 그리고 특히 자랑스러워하시는 손뼉소리가 울리는 수련시간을 향해 하루가 즐겁게 달려갑니다.

아직 오른쪽을 풀고자 하면 오른쪽이 더 어그러지는 측은한 몸 상태이나 늘 먹고 자던 돼지에서 상허하실의 표본이라는 독수리로의 변화의 가능성을 일깨워주신 원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가르쳐주신 대로 생활 속에서 숙제 열심히 하겠습니다.

2012년 4월 27일

땀 흘리며 배우는 수련생 自在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