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爲에 대한 人爲的 도전

몇 년 전 잘 아는 병원장 부부가 아프리카 선교활동을 하고 돌아왔다.
이들은 2년에 한 번씩 교회에서 자원봉사자들을 모아서 1개월 동안 의료봉사를 해오고 있었다. 지난번에 간 곳은 소말리아의 오지였는데, 문명사회와는 완전히 단절된 그런 곳이었다고 한다. 물이 너무 더러워서 가지고 간 식수로 라면을 끓여 먹다가 나중에는 마실 물이 부족해서 생라면을 먹고 견뎠다는 고생담을 이야기 해 주었다. 얼굴이 수척해진 데다가 피부까지 새까맣게 탄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까지 하였다. 그 더운 아프리카,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그러나 이들은 봉사활동에 대해 남다른 뿌듯함과 긍지를 가슴 벅차게 느끼고 있는 듯 했다. 단 한 차례의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고 원시적 모습 그대로 동물적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의술을 베풀면서 의사로서 자부심을 크게 느낄 법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 속에서 무언가 모를 편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리 나게 봉사활동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내가 도리어 쑥스럽고 좀 불편했는데, 아무튼 속이 편치 않았다. 조금 조용히 봉사를 하면 좋을 텐데, 요즘엔 사치스럽게 행하는 봉사활동이 많아서 그런지 순수한 이분들의 봉사까지 편한 마음으로 듣지를 못 했다. 원래 봉사는 내가 힘이 있어서 누구를 돕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 돕고자 하는 일이 곧 자신의 일로 생각이 되었을 때 하는 봉사가 진정한 봉사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알고 있다. 

어찌 되었던 사실 내 마음이 불편하게 만든 원인은 의료 혜택을 처음 받아 본 원주민은 이들 봉사 팀이 떠난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들이 아프면 누가 치료를 해 줄 수 있는가? 계속해서 돌봐주지도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그런 섣부른 봉사는 자제를 했어야만 했다. 계속하지도 못할 봉사를 어쩌자고 시작해서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들 의료봉사 팀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고 바람만 불어 넣음으로써 무책임하게 그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돌아온 것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이 지구상의 원주민과 토착민들이 선교사나 문화 인류학자들에 의해 그들의 문화는 물론 종족 자체의 생존까지 끝내 지키지 못하고 멸종되어 왔는가? 의료봉사 팀은 이들 인류학자들과 똑 같은 짓을 선교 사업이랍시고 하고 돌아 왔다. 고생은 많이 하였겠으나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돌아왔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다는 점이 울화를 치밀어 오르게 하였다.

인간은 거대한 콘크리트 제국에서 현란한 옷을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지구의 입법자로서 주인 행세를 하는 존재이다. 인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장 잔인한 동물이다. 끊임없이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입맛을 돋우기 위해 반 평도 안 되는 공간에 송아지를 묶어 키우는 인간, 호화롭게 치장하고 가장 선하고 고귀한 행세를 하면서 동시에 더 없이 잔인하고 더럽고 비열한 짓을 하는 존재가 문화인이요 문명인이다. 소말리아 오지의 원주민들은 비록 옷을 벗고 동물처럼 살아도 우리들 문명인들이 행하는 것처럼, 지저분한 성범죄나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다. 생태계를 파괴하지도 않으며, 자연을 경외하면서 살아간다. 조금 더 짜릿한 쾌감과 쾌락을 얻기 위해, 그리고 색다른 음식의 맛을 즐기기 위해 우리들 문명인들처럼, 온갖 수단을 동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산 속에 피어있는 꽃처럼 살아간다.
그들은 우리처럼 꽃을 꺾어 와서 자기 집 화분에 옮겨놓는 짓을 하지 않는다. 문화란 자연과 대립되는 것으로 자연을 농락하는 인간 잔재주의 부산물인 엔트로피가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한 때 문화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문화적인 모든 혜택으로부터 벗어나 계곡에 핀 꽃처럼, 길섶에 난 잡초처럼 살아보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래서 한 때는 출가하여 산 속에서 소리 없이 살다 죽고 싶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런 기분에 사로잡혔던 때가 아마도 1990년대 초가 아니었나 싶다. 노태우 정권이 끝나가는 1992년 여름 나는 이 혼잡한 사회에서 훌쩍 벗어나 지리산의 이름 없는 꽃의 정취라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실상사 말사인 백장암을 찾았다.

백장암은 나의 고교 은사인 대식스님이 계시는 곳이기도 하여 틈나는 대로 들락거리는 나의 도피처와 같은 곳이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어 홀가분한 기분으로 한 달 정도 연구 논문도 쓸 겸해서 이곳에 왔다. 백장암은 신라 흥덕왕 때에 지어진 사찰로서 국보 제10호인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과 보물 제40호인 실상사 백장암석 등이 있을 정도로 원래는 그 규모가 큰 절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청화큰스님께서 수도를 하시던 곳이어서 나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는 절이었다.

짐을 풀은 지 사흘이 되던 난, 나는 대식 스님을 모시고 인월에 나갔다 돌아오는데, 암자 바로 아래 주차장에 한 쪽 구석에서 모 대학 대학원에 다니는 여대생이 비를 맞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 학생은 대식스님이 주관하는 동사섭에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나이가 든, 학생 아닌 학생이었다. 걱정이 되어 들어가라고 하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장맛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질 않은가. 철학을 하는 사람이니 이정도 멋은 부릴 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암자로 올라갔다. 얼마 후 점심을 들고 차를 마시는데, 갑자기 그 학생이 생각이 나서 우산을 들고 주차장으로 나갔다. 그랬더니 아직까지도 그 많은 비를 그대로 흠뻑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조금 있으니 대식스님의 젊은 상좌가 우산을 쓰고 내려왔다. 함께 설득을 하는데 도무지 들으려 하질 않는다. “철학을 심오하게 하면 저렇게 하는 것인가?” 몇 시간 째 저렇게 비를 맞고 있으니, 잘 하면 지리산의 여자소크라테스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젊은 스님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장맛비가 쏟아지는 지리산 자락을 올려다보는데, 세상에 이렇게 지리산이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산신들이 사는 그러한 산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산 중턱에 운무까지 끼어 있어서 너무나 멋이 있었다.

그래서 젊은 상좌에게 제안을 하였다.

길 : 스님, 우리도 함께 비를 맞읍시다.

상좌 : 비요? ...히히 좋지요. 까짓 것 기분도 그런데 잘 됐네요. 우리 처녀 보살님과 함께 맞지요.

길 : 그냥 비를 맞으면 옷이 젖으니, 다 벗고 맞는 게 어떻소?

상좌 : ......... ? 아니 그래도 그렇지.....

길 : 옷 입고 맞는 비, 무슨 재미가 있어. 기왕 맞는 비, 한 번 멋있게, 맞는 것처럼 맞아 봅시다.

상좌 : 허허.. 아이고... 우리 스님이 보시면 어떻게 해요? 난리 날텐데... 어매.... 애라, 모르겠다.

선생님이 하신다면야... 좋죠. 한 번 맞아보죠. 우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처녀 보살이 혼비백산 도망을 간다. 결국 우리 둘은 옷을 벗기 시작을 했다. 하나하나 벗어서 우산살에 걸쳐 걸었다. 마지막 팬티를 벗을 때에는 긴장을 했다. 그러나 막상 벗고 나니 너무 홀가분했다. 그리고 서로를 처다 보면서 킥킥 웃었다. 팬티를 옷 틈 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차로 쪽이 아닌 반대편 산 쪽을 향하여 걷기 시작을 하는데 두 사람 모습이 가관이다. 나는 그래도 좀 날씬한 편이었으나, 젊은 스님은 공부하는 스님답지 않게 똥배가 툭 튀어 나와 예술이 따로 없다. 서로를 바라보며 계속 킥킥거리며 우산을 들고 걷는데, 아니 비를 맞자고 해 놓고 우산을 쓰고 옷만 벗고 걷고 있으니 이게 무슨 짓인가? 한참을 서로 깔깔대다가 우산을 접었다. 머리를 빡빡 깎은 땡 중과 까맣고 시커먼 안경을 낀 못생긴 두 사람이 발가벗고 대낮에 빗속을 헤집고 산을 오르고 있으니 어찌 진풍경이 아닐까? 옷이 젖지 않게 단단히 손으로 우산을 틀어잡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웃음을 참으려 해도 참을 수가 없다. 산을 오르다가 서로를 쳐다보고 웃고, 그러면서 한 시간쯤을 돌아다녔다. 길이 없어 산 아래쪽으로 한참을 내려오게 되었다. 자칫하면 큰길이 나올까 싶어 암자 올라가는 차도를 찾았다. 한참 만에 겨우 찾아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차가 올라오면 어쩌나?” “왜 차가 한 대도 안 지나가지?” 불안과 섭섭함이 동시적으로 교차되면서 암자 쪽으로 가까이 오는데, 저 위쪽 모퉁이 바위 위에서 그 철학하는 처녀 보살이 비를 맞고 있다. 어떻게 하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이미 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스님은 저 뒤에서 숨을 죽이고 내게 손짓을 하면서 킥킥거리고 있다.

“아니,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아직도 비를 맞고 있어?”

내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본 처녀 보살은, “으악, 엄마야!” ... 앉았다 뒤로 넘어지면서 일어나자마자 걸음아 “나 살려라.”는 듯이 정신없이 도망을 간다. 나는 그래도 명색이 철학을 하는 대학원생이니 좀 뭔가 다르겠지 했는데... 도망을 가버려서 실망스럽고 못내 아쉬움이 있었다. 다시 우리는 암자를 향해 걷기 시작을 했다. 장대같은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그래서 젊은 스님에게 “어이 스님,” “우리 대식스님 이름이나 부르면서 들어갈까?.” 자신의 은사스님 이름을 부르면서 암자에 들어가자고 하니... 좀 당황스러웠던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대식아! 대식아! 하고 목이 터지라고 선창을 하며 걸었다. 그랬더니 젊은 상좌도 따라서 대식아~ 대식아~ 하며 악을 바락 쓴다. 악을 쓰다가 웃고, 깔깔 웃다가 또 부르고.... 남들이 보면 술 마시고 주정하는 것으로 봐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미친 짓을 둘이서 하고 있었다. 비는 더 억수 같이 쏟아지면서 불안한 마음 한구석을 씻어주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 절 문 앞으로 들어서는데 서서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스님 이름 부르기를 그치고 절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절 안에는 1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는데, 어쩐 일인지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는다. 빈 절간 같다. 스님 처소 앞을 지나고 우물 앞을 지나는 데도 전혀 인기척이 없다. 누군가가 “좀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갑자기 처녀 보살들이라도 튀어 나오면 어떻게 하나?” 상반된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상좌스님은 용감하게 발가벗은 채로 법당 앞을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데, 사진을 찍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나는 넓은 마당 모퉁이 내가 기거하는 방 옆에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원래 부엌이지만 임시 샤워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수건만 가지고 그리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나무로 된 큰 두 문을 걸어 잠그고 샤워를 했지만, 당당하게(?) 활짝 열어 놓고 샤워를 하였다.

무사히 무애행각(無碍行脚)을 마치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는데, 아직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무언가 큰일을 끝내고 개선한 사람처럼 아직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무애행각을 하였으나, 맘 한구석에 남아 있는 불안을 통째로 없애지 못한 불편한 행각이었다. 방문을 활짝 열고 밖을 바라보는데, 운무가 낀 지리산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 빗소리를 반주로 펑펑 울고 싶다. 내게 무슨 서러움과 한 맺힘이 있어서 그리 울고 싶은지 나도 알 수 없었으나,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따듯한 차를 한 잔 마시고 나니 그제야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왔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대자연의 품속에 나를 맡기고 싶어 젊은 상좌를 꼬여 광란의 누드 산행을 결행하였으나,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불안을 떨쳐 내지를 못했다. 자연과 너무 동떨어진 내 삶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에서 시도한 몸짓이었지만, 그것은 한 사람의 관객 앞에서 벌린 백주의 누드쇼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인위에 대한 인위적 저항이었다. 멋을 잔뜩 부린 인위적 저항 말이다.

도대체 무엇이 인위고 무엇이 무위자연인가?

누구나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먹고 싶고, 좋은 옷이 있으면 입고 싶어 한다. 돈도 벌 수 있으면 가급적 많이 벌고 싶고, 예쁘고 상냥하고 똑똑한 여자가 있으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큰 집을 사서 좋은 정원 꾸며 놓고 큰 울타리를 치고 나만 즐기며 보고 싶다. 내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많은 재산을 무려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바람은 한 낫 인간의 욕심, 인위적 사고의 일반적인 전형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위자연은 무엇인가? 치타가 스프링버그를 공격해서 잡아먹는 일이나, 원숭이 수컷이 다른 암컷의 새끼를 붙잡아 먹는 일, 짝짓기를 하고나서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나 거미의 비열하고 몰상식한 행동(?)도 모두가 무위자연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욕심이 들어간 일체의 행위는 인위이고, 자연 세계의 다른 생물들이 벌리는 약육강식의 잔치는 무위자연이 아닌가?

그러나 무위자연 사상의 핵심은 어떠한 행위가 무위이고 인위인가를 논하는 데 있지 않은 듯싶다.

계곡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俗人)의 모든 행위는 인위적일 것이며,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며, 말 타고 사냥을 하며, 심지어 살생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道를 깨달아 道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그의 모든 행위는 無爲가 될 것이다. 어떤 구체적인 행동, 어떠한 모습, 어떤 특정한 문화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달린 문제이다. 따라서 같은 행위가 무위가 되고 인위가 될 수 있는 그런 이치가 아닐까 싶다.

나타난 현상이 문제가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이 관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