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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돌법의 “밝”수련
문화란 주관적 정신이 모여 만들어 낸 객관적 정신의 산물이다. 각 나라 문화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정체성이 있다. 그 정체성을 한 두 마디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정체성을 특징짓고 이해 가능하게 하는 키워드가 하나씩 존재한다. 서구 문화에 있어서는 로고스(logos), 중국 사상의 도(道), 그리고 인도의 니르바나(Nirvana)가 그것이다. 이 개념들은 이들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러한 키워드는 우리 문화에도 있다. “밝”과 “한”의 개념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두 개념은 단군 이래 사용되어 왔는데 서로가 유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나 그 쓰임새는 각기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그래서 이를 합해 “한․밝” 문화라고도 말한다. “밝”과 “한” 개념을 분명하게 구분 짓기는 어렵지만 굳이 그 차이를 드러내 본다면, “한”은 체(體)쪽에 해당하고, “밝”은 용(用)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두 개념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를 요약해 보면,
먼저 “한”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집약된다.
가) 유일. 나) 하늘. 다) 밝다. 라) 크다. 마) 중앙
“한”은 존재론적으로 만물의 근본이면서 하나인 만물 자체이다. 이 개념은 본래 실체의 속성으로서만 기술되어 오다가 차츰 존재론적 의미로 자리 잡게 된 개념이다. 그것은 과거에도 존재하였고, 현재에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존재할 영구불변의 존재, 자연자체이다. 그것은 또한 만물을 주재하는 존재요 힘, 이치, 질서 자체이기에 “하늘”, 또는 “하늘님”이라는 인격성을 부여하여 부르기도 한다. 아울러 생명의 근원으로서 존재를 유지하게 하는 생명의 중심이며 구심점이다. 이 존재의 속성이 “밝”이다. 빛, 광명, 진리는 “한”, 즉 “존재”의 속성으로 무생물이나 생물 등 모든 사물 속에 내재하는 것으로 삼라만상의 생성소멸을 주관한다.
밝돌법 수련은 “한”, 즉 하늘로부터 우리 몸 안에 부여받은 성품, 즉 “밝”의 씨앗, 하늘의 “밝”을 몸소 환하게 밝힘으로써 자신의 존재의미를 자각하여 개전일여 하고 하늘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밝”이란 이처럼 빛, 광명, 불, 진리, 우주의 힘, 정기, 생명 에너지를 총칭한다. 우리는 배달의 민족, “밝”의 땅과 산(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 온 빛의 민족이다. 그러므로 “밝을 받는다.”는 말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1) 내 몸속 “밝” 받는 불두덩(단전)에 불을 지피고, 2) 바른 세상 이치를 터득하여 “밝”을 받고, 3) 하늘(존재의 근원)과 소통하여 “하늘사람” 되는 것이다.
우리 몸속 불두덩은 밝을 받는 곳, 즉 단전으로 생명의 근원 자리이며, 하늘과 소통하는 통로인 것이다. 생명의 불기운, “불의 알”, “불알”, 불씨가 있는 곳 이다. 그곳은 삶을 유지시켜 주는 에너지, 기운이 만들어지는 곳이므로 불두덩은 생명의 중심이며 대광명 진리로 나아가는 문이다.
또한 이곳을 통해 사람들은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이치를 터득하게 된다. “밝”은 밝음(明)의 의미인 “밝다”에서 빛으로 무언가를 분명하게 드러내어 밝히다, 밝혀내다, 바르다(발라내다 : 겉을 싸고 있는 것을 벗겨 속에 든 알맹이를 집어내다)의 의미가 있다. 즉 들추어냄으로서 사물의 진상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뜻에서 “바르다”(올바르다, 올곧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밝을 받는다.”는 일은 곧 바르게 살아가는 이치를 터득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바르지 않으면 “밝”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세 번째로 “밝”의 성품을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다. 그것은 불두덩 불씨이며 존재의 근원으로 하늘과 소통하여 하늘 사람이 될 수 있는 근거로서 단전을 말한다. 선도주의 말씀처럼, 인간은 받은 성품을 닦아 “하늘사람 진리에 하나 되어” “구활창생” 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이다.
이렇게 본다면 "밝의 씨“ 불두덩은 유가(儒家)적으로 말해서 인의예지 사단(四端)이며 理氣의 理로서 성품이며, 도가(道家)적으로 보면 내재적인 도(道)에 해당되고, 불가(佛家)적으로는 불성(佛性)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면 Imago Dei, 즉 신의 형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삼교와 기독교는 "밝" 사상에 있어서 이미 하나로 잘 융해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이런 까닭에 최치원은 밝돌법 풍류도에 삼교가 하나 되어 들어 있었다고 하였다.
가히 통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 풍류도 밝돌 문화에는 하늘사람 되어 구활창생 할 수 있는 수련의 원리가 있다. 국선도 3대 수련 원리인 조심(調心)과 조식(調息), 조신(調身)이 그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과 호흡, 그리고 몸은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에 속하는 속성들이다. 국선도 3대 수련 원리는 인간의 기능적 특성을 세 파트로 분류하여 "밝" 받는 방법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것이다.
조심은 마음을, 조식은 호흡을, 조신은 몸을 고르는 일을 말한다. 마음이란 본래 한 곳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많다. 마음이 그 중심을 잃으면 들뜨게 되어 생각에 빠지고, 감정에 치우치고, 일에 치이고, 욕심의 덧에 걸려들어 허우적거리게 된다. 마음의 상태가 이렇게 중(中)을 집수하지 못하면 호흡은 거칠어지고 고르지(調) 못하게 됨으로서 몸이 불균형 상태가 된다. 자연의 이치도 이와 같아서 온․냉․한․습이 서로 저 잘났다고 홀로 지배를 하려 한다면, 자연은 그 힘을 토설케 하여 이를 응징하여 균형이 깨어지지 않도록, 한도를 넘지 않게 한다. 자연과 인간 세상을 유지시키는 이치는 그러므로 中을 지키는 데 있다. ”밝“ 받는 수련 예외는 아니다.
마음이 치우치면 호흡이 고르지 못하며 몸은 불균형 상태가 된다. 육체를 지탱시켜주는 기운이 한 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의미다. 오장육부에 골고루 분산공급 되어야 할 기운이 머리와 가슴에 몰려 상기되는 것을 뜻한다. 조심과 조식, 조신은 마음과 호흡, 몸이 한 곳으로 넘치고 치우치지 않게 잘 고르고 골라 한도를 넘지 않게 하여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밝 받는 준비”인 셈이다.
이렇듯 쏠림이 없을 때 우리 심신은 편하게 되어 기운이 고루 분배되어 기분(氣分)이 좋아진다. 기분이란 몸속 기운이 특히 위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불두덩을 중심으로 온 몸에 고루 분산(分散) 되어 있을 때를 말한다. 이때에 심신이 편안하여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정심 : 바르게 마음을 쓰고,
정시 : 치우침 없이 바라보고,
정각 : 中의 자리를 알아차려,
정도 : 쏠리지 않는 가운데 길을 찾고,
정행 : 넘치지 않는 행동을 하라.
국선도 훈(訓)은 하나 같이 바르게 “밝”받는 “밝 수련”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밝돌법 “밝” 수련은 세상을 진실 되게, 넘치지 않고 더불어 하나 되어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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