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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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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심과 무관심
등록자 행복한 선택 등록일 2008-09-21 12:04



관심과 무관심


 


나는 토박이 우리말을 좋아한다.
구수해서 좋고 깊은 맛이 우러나와 좋다. 서민적 정겨움이 흥건하고, 그 숨겨진 뜻이 깊다.

하늘, 물, 바람, 구름, 어머니 엄마, 아버지 아빠, 사랑, 다솜, 고향, 배달, 배짱이, 눈, 홀어미,
홀아비, 새끼, 소리, 소리, 친구, 스승, 눈시울, 눈치, 봄, 여름, 꽁무니, 가을, 숨, 겨울, 누리에
가득하고, 한밭, 씨, 참, 하나, 하니, 푸른들, 자랑, 이슬 같은 눈물, 아름다운 나라, 밝돌터....


이렇듯 토박이 말 하나하나에는 깊고 그윽한 맛이 스며져 있다. 배춧잎처럼 파랗게 살아 숨쉬

고 있다. 모두가 우리 마음을 열게 하고 가슴 찡~하게 만드는 그런 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말들이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다. 의미를 생각하면 피하고 싶은 말들

도 있다.

예를 들면, “싫어!”, “안 돼!”, “저리가!” “그냥요”, “괜찮아!”와 같은 표현들이다.
이러한 말들은 대체로 상대에게 귀찮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보낼 때, 또는 어떤 일을 하지 못
하도록 강하게 제동을 걸 때 사용한다. 모두가 듣는 이에게 무관심을 보여줌으로서 충격을 주
는 표현들이다. 위의 예들 중에서, “괜찮아!”라는 표현은 순수 우리말은 아니다. 이 말은
아주
편하게 들리지만 우리를 속 비좁게 만드는 썩 달갑지 않은 표현이다.

“괜찮다.”라는 말은 “관계하지 아니하다.”의 준말이다.
“나는 관계가 없다.” 즉 나 하고는 무관하다. 또는 “관계할 생각이 없다.”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는 이 말을 사용한다. “네, 괜찮아요.” [나와는 상관없으니, 너나 
알아서 하세요. 좋으실 대로 하세요.]라는 말을 “좋아요.” 또는 “그렇게 하세요." ......이렇게
표현하면 문제될 일 없다. 하지만 “나는 관계하지 않겠다. 나와는 관계없다”는 뜻을 지닌 이

말을 매일 밥 먹듯 사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 잘 쓰던 말을 갑자기
없애자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 보자는 뜻이다.

이 세상에 나와 무관한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 속 크고 작은 모든 존재는 단위(unit)를 가지고 있는 개체이다. 그것들은 독립되어 있으
면서도 다른 개체와의 관계 속에서만이 의미를 갖는 존재들로서,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
다. 이 개체들은 저마다 다른 유닛과 "서로 내적으로"(inter) 관계하면서 고유한 자신의 정체성
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하지 않는다.”, “상관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괜
찮다.”라는 말의 사용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해 부족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독립적이면서도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나는 누구인가?”는 질문을 받게 되
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천차만별로 다양할 수
있다. 어떠한 철학과 종교,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답의 유형이 나누어진다. 그러나
그 대답이 크리스천이든 불자이든 힌두 교인이든지 여기에는 변할 수 없는 하나의 공통성이
있다. 그것은 “너와 나”, “나와 우리”, “나와 세상”, “나와 진리”, “나와 세상”, “나와 사물들”
의 관계를 떠나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관계를 떠나서는 어떠한 설명이나 이해도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인간의 삶이란 각자가 가
지고 있는 관계의 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내재적 원리에 대한 해석
을 철학과 종교, 과학은 제각기 자신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내리고 있는 것뿐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외연을 넓혀서 세상을 크게 바라다 볼 때가 되었다. 저마다 높게 쌓
아 올린 울타리, 벽을 허물어 “나 하나 중심”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이
해하고, 이웃을 바라보고 세상을 인식해 나갈 수 있을 때, “나와 나”, “나와 너”, “나와 자연”이
갈등하지 않고 풍류도 “밝돌정신”과 원효의 화쟁사상, 율곡의 理氣一元과 같은  배달의 민족혼
을 오늘에 되살릴 수 있다. 그리하여 “둘이면서 하나”[二而一] 되는 현묘지도(玄妙之道)의 이치
를 일상의 관계 속에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밝돌법 수련"은 밝의 순환에 대한 이치를 다루는 수련법이다. “밝”에는 너와 내가 없다. 그러
나 “밝”이 드러나는 곳에 “너와 나, 그리고 사물”의 관계가 있을 뿐이다. 이 관계를 몸으로 마
음으로 터득하여 받아들일 때 개전일여가 전개되지 않을까 싶다.

무관심은 강한 관계의 부정이다.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관심에서 관계 이해로, 관계 이해에서 “둘이면서 하나”[二而一] 되는 현
묘지도(玄妙之道)의 깊은 밝돌법 수련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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