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도와 명상
 
명상만큼 현대인들이 필요로 하고 있는 마음 수련이 없어 보인다. 매일매일 긴장과 잡다한 상념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대안이 명상이라고 믿는 까닭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주변 대부분의 수련단체들 또한 “명상 수련”을 내세우고 있다.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국선도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명상을 유별나게 강조하는 수련장들이 나오고 있다. 국선도가 심신을 단련하는 수련인 만큼, 명상과 무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선도는 명상을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로 내 걸만큼 처음부터 심법(心法)위주의 명상 수련을 강조하지 않는다. 청산선사님이 전하는 국선도 교본 어디에서도 명상을 강조해 논하고 있는 곳은 없다.
 
일반적 의미에서 명상은 경직된 심신을 이완시켜 산란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정신적, 심리적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 행하는 마음 수련을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상은 서양 문화가 아닌 동양 문화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그 뿌리는 인도의 요가로부터 시작하여, 힌두교와 중국의 선불교, 그리고 도가 등에서 내면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련 방법으로 각기 발전되어 왔다. 서양인들이 내면적 정신을 고양시키고 심신의 건강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찾아낸 명상은 대부분 인도의 요가나 중국의 도가 사상, 쿵푸, 기공, 그리고 선불교와 얽혀져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오늘날 일반인들에게 명상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퍼지게 된 것은 서구인들이 일조를 한 덕택이다. 미국에서 알아주는 국산은 국내에서 더 돋보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명상 센터가 도처에서 붐을 이루고 있다. 명상은 단순한 정신적 심리적 안정뿐만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정신질환, 그리고 불치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큰 효과가 있음이 입증된 뒤부터이다. 그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도 여기저기서 명상센터가 건립되고 있다. 그래서 수련단체들도 앞을 다투어 명상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좋은 현상으로 볼 수 있겠으나 씁쓸한 기분을 못내 지울 수 없다. 글로벌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고, 지나가는 유행으로 치부한다 하더라도 道를 닦는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까지 훼손시켜 가면서 “명상 수련”을 전면에 내세우는 일은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결가부좌를 하고 고요하게 앉아서 몸의 자세를 가다듬어 마음을 가라앉혀 단전에 집중시켜 호흡을 하는 것을 명상이라고 한다면 그리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심법(心法) 위주의 명상 수련은 국선도의 기본 정신과 거리가 있다. 물론 국선도가 심법과 관계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수련의 앞과 뒤, 선과 후, 주목적과 부목적은 다르다고 하는 점이다. 청산 선사님은 자신이 저술한『국선도』(1권 26쪽, 1983년 종로출판사)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불가의 도와 유가의 도는 그 수심(修心)으로 인하여 수신양성(修身養性)이라는 부목적이 이루어지나, 수신연성(修身煉性)을 목적으로 하는 국선도는 그 수신연성으로 인하여 수심(修心)이라는 부목적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불교와 유가는 마음 닦는 心法을 위주로 하고 이를 통하여 몸을 닦고 성품 기르는 일을 부차적으로 이루지만, 국선도는 수신연성(修身煉性), 즉 몸을 먼저 다스림으로써 수심(修心), 즉 마음 닦는 일이 부수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원래 몸이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니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먼저 마음 그릇부터 바르고 깨끗하게 만들어야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바르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몸을 다스리는 일을 소홀히 하고 명상이나 참선 등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또는 깨달아 닦아 가는 일을 국선도와 거리가 있다. 
 
추상적인 것은 사물의 본질로서 언제나 구체적인 것, 즉 현상적 모습을 통해 들어나게 되어 있다. 몸은 구체적인 것이며, 마음은 추상적인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아니기에 양자는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나”의 정체성은 ‘마음’, 하나이거나 ‘몸’ 하나만도 아니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국선도는 마음을 변화시켜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련법이 아니다. 먼저 구체적인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서 마음을 잡아가는 그러한 수련법이다. 체지체능(體智體能)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안이 어지럽게 정돈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마음 다스리고 가다듬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국선도가 심법을 경시하거나 마음 수련을 배제하고 몸만을 수련한다는 말은 아니다. 국선도의 핵심은 심법이라 할 정도로 수련의 백미는 마음 수련에 있다. 그리고 마음은 몸을 다스려 나가는 데 있어서도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修身, 몸을 다스릴 수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음을 위주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이 들어 갈 그릇을 바로 닦지 않고 어떻게 바른 마음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국선도의 3대 수련 원리는 調心과 調身, 그리고 調息이다.마음과 몸, 그리고 호흡을 다스리는 수련이 국선도인 셈이다. 몸을 닦기 위해서는 몸의 주인인 마음이 바로서야 하고 마음과 몸이 바로서서 치우침 없게 되기 위해서는 호흡을 잘 다스려야만 한다. 몸과 마음, 그리고 호흡 그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국선도 수련 단계를 보면 이를 잘 뒷받침 해 주고 있다.
 
국선도 수련에는 정각도와 통기법, 선도법 이 세 단계가 있다. 명상과 심법은 통기법과 선도법에서 주로 하게 되는 수련이다. 일반인들이 하는 정각도 수련은 명상이 主가 아니라 몸 풀기 위한 수련이다. 물론 조신을 하는 정각도 단계에 있어서 조심과 조식은 필수적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통기법과 선도법 단계로 올라가면 수련의 주 대상은 몸이 아닌 마음으로 옮아간다. 명실공이 도를 닦아가는 전문 수도인들의 수련이다. 그러므로 정각도 단계에 있어서 명상 위주의 수련은 문제가 있다.
 
수련의 선후를 따지자면 중심이 흐트러진 몸부터 스트레칭과 호흡을 통하여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심법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일 것이다. 진정한 국선도인이라면 유행에 따르는 섣부른 변화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국선도의 정체성을 바로 잡아가며 수련을 해야 한다.
 
 몸을 부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쉽게 얻게 되는 고요와 평화는 쉽게 깨진다는 사실을 또한 모두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굳이 국선도에서 명상을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몸을 풀고 기운을 양생해 나가는 명상, 단전호흡 명상이 되어야 한다. 국선도에서는 단전호흡 그 자체가 고도의 마음 집중이며 명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