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를 정복한 한국산 거북이  

맑게 갠 파란 하늘과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 푸른 바다가 있는 지중해는 사시사철 활기로 가득 차 있으면서 아름답다. 어디를 가나 도처에 낭만이 흐른다. 지중해 연안의 나라 사람들은 성격이 호탕하며 화끈하다. 어두운 그림자가 없어 좋다.    

어느 해 여름 대학 은사님이 독일에 가시는 길에 우리 집에 오셨다. 제자의 연애 상담도 종종 해 주시던 선생님, 고민스러운 문제를 시답잖게 들으시면서 언제나 콕 찌르는 말씀 뒤에 잘 해보라고 격려 해 주시던 선생님이셨다. 어디를 먼저 가시겠느냐고 여쭈니, 박물관이 아니라 해변으로 가자고 하신다. 혼다 오토바이 뒤에 선생님을 모시고 아테네 근교 ‘글리파다’ 해변으로 갔다.     

수세미 머리에 가시처럼 마른 체구로 무슨 수영을 하시겠나 싶어 해변 산책로가 잘 되어 있는 곳으로 모시고 갔다. 그런데 해변에 도착을 하여 음료수를 사러갔다 오니 수영복도 없이 60년대 고전 팬티만 입으시고 바다로 들어가고 계시지 않는가!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 곳 하지 않으시고 구렁이 허물 벗듯 모래 위에 옷을 벗어 놓고 물속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옷을 지키면서(?) 선생님을 찾으니 선생님이 눈에 띄지 않는다. 깜짝 놀라 서서 자세히 쳐다보니 벌써 저 멀리 수평선 쪽으로 헤엄을 치면서 가신다.   

걱정이 되어 자세히 살펴보니 수영을 하시는 것이라기보다는 거북이가 파도를 타는 듯이 천천히 바다 한 가운데로 점점 멀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제자의 애간장을 태우게 하시더니 한참 만에 바다에서 나오셨다. “지중해가 참 좋긴 좋네.” “생각보다 맑고 깨끗해.” 이렇게 깡마른 체구로 수영을 잘 하시니 나도 희망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영 좀 가르쳐 주시라고 맥주 한잔 따르면서 조르니, “응, 좀 이따 가르쳐 줌세.”   

이틀이 지나는 데에도 가르쳐 줄 생각이 없으신지... 아무 말씀이 없다. 다시 포도주를 한잔 따라드리면서 수영법에 대해 조르듯이 여쭈었다. 배우고자 하는 간절함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포도주 한잔에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말문을 여셨다.    

“내가 수영을 어떻게 배운지 아는가? 수영을 하다 한 번 거의 죽을 뻔 했던 적이 있네. 왜 그런지 아는가? 내가 물을 다루려고 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지. 그 뒤로 나는 물에 저항을 하지 않고 수영을 했어. 수영은 먼저 모든 걸 물에 맡겨야 하고, 물의 움직임에 저항하지 않고 그 흐름을 탈 수 있어야 해.”  

참으로 일리 있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날부터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지중해 물이 너무 맑아 숨을 참고 물속에서 돌아다니면서 때로는 나체로 수영을 익혔다. 물의 흐름을 타면서 저항하지 않고.... 잘 하면 10M 정도까지는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때마침 교민들의 하계 야유회가 있어 마라톤 해변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이젠 나도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태권도 사범이 물에서 나오더니, “김형, 저 옆으로 조금만 헤엄쳐 가봐. 모두 다 누드들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마른침을 삼키면서 차분히 생각해 보니 조금만 잘 헤엄쳐 가면 갈 수가 있어 보였다. 

 조심조심~ 저항하지 않고 흐름을 타면서~ 또 조심, 또 조심 가슴을 조이며 해변 모퉁이로 다가서는데, 갑자기 파도가 나를 덮치는 것이 아닌가! 물을 한번 먹고 나니 정신이 없다. 누드고 나발이고 아무런 생각이 없다. 오로지 헤엄을 쳐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다. 내가 오는 거리만 생각을 했지 돌아갈 거리까지는 미쳐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영락 죽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움을 요청하는 데도 아무도 나에게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구사일생으로 절벽에 붙어서 무릎을 다 깨면서 견디다가 간신히 돌아올 수가 있었다. 

 그 뒤로 나는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국선도 수련을 하면서 단전호흡 또한 수영처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머리로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듯, 자연의 순리를 따라 몸으로 체득을 해가는 수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한 호흡 한 호흡 욕심 내지 않고 받들어 모시듯 호흡을 하라.”는 지도 법사님 말씀이나 물에 저항하지 않고 물을 받들어 모시듯이 물과 흐름을 함께 해야 하는 수영의 이치가 어찌 다르겠는가!  

 내게 수영을 가르쳐주신 은사님은 내가 대학생 때부터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실 정도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분이시다. 그런데 고희(古稀) 때에도, 선생님은 똑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신 말씀은 25년 전부터 내가 들어 온 이야기이니 그 말씀을 믿지 마시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까지도 선생님께서는 놀라운 건강을 잘 유지 하고 계신다. 선생님의 건강 비법은 거북이처럼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세상의 흐름을 타는 삶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선생님께서는 한 번의 수영으로 내게 지중해를 정복하는 비법과 자연에 순응하는 길을 오래 전에 보여 주신 것이다.(19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