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광의 자존심

나는 속도광이다.

오토바이는 130km, 자동차는 계기판 끝인 시속 180km 넘게 달렸다. 누군가 나를 추월하려고 하면 더욱 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티고’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던 때이다. 차가 별로 많지 않던 중부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갑자기 ‘티고’가 160으로 달리고 있는 나를 추월하는 것이 아닌가! “어쭈구리, 이런...!” 전투태세를 하고 액셀을 가속해 밟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겨우 추월을 하려는 판에 트럭이 앞을 가로막아 1차는 실패를 했다. 전열을 다듬어 다시 쫒아가는 데 느린 차들 때문에 더 이상 추월을 할 수가 없었다.

찜찜한 기분으로 10분 정도를 달리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티코’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속도 단속을 하는 경찰에 잡혀 서 있는 녀석을 보고 비로소 마음이 풀렸다. 쥐눈이 만 한 차에 자존심이 쭈그러졌지만 그래도 이번만은 좀 견딜 만 했다. 이제는 옛날처럼 미친 녀석처럼 차를 몰지 않는다. 왜 그런 일에 자존심과 목숨을 걸고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느리게 달리면 뭔가 뒤쳐진 것 같은 심리적 불안이 강하게 있었던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뒤지지 않으려고 노심초사 안간힘을 썼다. 세월이 지나 생각을 해 보니, “똥줄 타는” 시간을 참으로 많이 보낸 것이다.

초조와 불안 .. 누구나 어느 정도의 원초적 불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 시대는 풍요와 안락함을 취하는 만큼에 비례해서 경쟁의 불안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위한 경쟁이며 속도인가? 생존하기 위해서 이러한 경쟁을 계속 해야만 하는 것일까?

토요일 새벽에 산보를 가려는데 전화가 왔다.“아빠, 저 병원에 입원했어요.” 군대나 빨리 갔으면 하던 둘째 녀석한테서 전화가 왔다. 밤에 들어오지 않아 야단 맞을까봐 두려워 미리 잔머리를 쓰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응. 치료 잘 받고 오너라.”고 했더니, “엄마 좀 바꿔주세요.” “너 엄마 새벽 기도 갔다. 엄마 그만 괴롭혀라.” “알았어요.” 하고 전화를 끊는다. 행여나 싶어서 2시간 후에 전화를 걸어보게 하니, 오토바이를 타다 발목이 부러져 곧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랜 수술이 끝나고 사고 경위를 물어보니, 다른 오토바이에 지지 않으려고 달리다가 사고가 났다고 한다. 순간 열이 받쳐서, “이 미련한 곰 같은 놈아, 뭐가 나온다고 그런 짓을 해!” “앙?”“아이 참, 조용히 좀 하세요. 아빠도 옛날에 그러고 다니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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