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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thing Meditation (호흡 명상)
국선도 여의도 수련원 송년회 강의 초록
수련원장 : 김내균
“마무리가 좋으면 시작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2009년 올 한 해를 마무리 잘 할 하시고 새해를 힘차게 출발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철학자 가운데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낸 석학 한 분이 계십니다. 조가경 박사가 그분입니다. 선생님은 남다른 식견을 지니고 계시는 분이시고 연구와 논문발표를 위해 세계 도처에 빈번한 여행을 다니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분께 우리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소견을 여쭌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불안정하다.”는 한 마디 말씀으로 표현하셨습니다.
공감은 되었으나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어 다시 여쭈었더니, “우리나라는 집을 초대받아 가 보아도 도시 구석을 둘러보아도, 학교를 돌아다녀 보아도 차분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덜 느껴진다.”는 내용이었어요. 우리 사회가 좀 들떠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단조로운 콘크리트 아파트 바뀐 일반 가정에는 모든 가구가 아파트처럼 새 물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가족의 역사가 때 묻은 가구를 찾기는 어렵더라는 것이었어요. 학교와, 도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초고속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은 초고속 문화에 앞장서서 나가는 나라입니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정보화 사회에 진입하면서부터 세계는 속도 전쟁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현대 문화의 리듬은 빨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동적이며 창의력과 순발력이 뛰어나며 모든 일에 적극적입니다. 그러나 옥에 티라면 삶의 여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성급함을 잘 다듬어 무한한 잠재력이 개발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할 때입니다.
국선도는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오늘날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수련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선도는 조심과 조식과 조신, 즉 치우친 정신과, 들떠 있는 호흡, 그리고 뒤틀린 자세를 바로 하고 흔들림 없는 심신의 중심을 잡아 극치적인 체력과 강인한 정신력, 숭고한 도덕력을 갖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순발력과 지구력, 집중력 그리고 무한한 마음의 평화와 여유를 지니게 해 줍니다.
새해에는 치우쳐진 몸과 마음의 중심을 바로 잡아 무엇보다도 들뜬 우리의 호흡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흡이 들뜨게 되면 상기 현상이 쉽게 일어납니다. 머리가 무겁고 아프며 어께가 뻐근하고 열이 차는 것이지요. 이런 상기 현상은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욕심이 많으면 상기 현상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지구도 열을 받아 상기 현상에 빠져 있습니다. 인간 욕심이 만들어낸 현상입니다.
열불이 나면 그 열을 식혀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지구 온난화 현상이 발생했고 많은 생명체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 온난화 현상이 지속되면 인류 또한 멸망의 길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심각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도적인 보완만 가지고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 수 있을까요?
국선도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들뜬 우리의 호흡, 우리 마음을 내림으로써 가능합니다. 마음이 내려오지 않으면 인간의 욕심을 제어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그 욕심으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환경운동, 녹색혁명, 친환경 경작, 음식 등 게걸스런 인간의 욕심을 자제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단순한 운동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들뜬 마음을 잡아줄 수 있는 수련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명상입니다. 명상 수련은 산란한 마음을 가장 편하고 안정된 상태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수련법입니다. 국선도에서는 명상을 따로 강조하지 않습니다. 단전호흡이 다름 아닌 명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전호흡은 일반 명상과는 다릅니다.
국선도에서 명상은 좌사법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호흡명상(Breathing Meditation)이 되겠습니다.
서양의 명상(Meditation)은 본래 마음을 가라 앉혀 차분하게 생각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의 명상은 정신을 한 곳에 모아 감정의 동요가 없는 고요한 평정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서구적 명상은 그러나 인도의 명상이나 중국, 한국, 일본의 명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명상은 무엇보다도 명상을 하는 사람의 주관, 즉 나(我)라는 개인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서구적 명상에는 無我, 無心과 같은 개념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인들의 명상은 주관적인 편견이 배제된 순수한 사고를 위한 목적을 위해, 즉 냉정한 사고, 진리 인식을 위한 수단으로서 명상을 합니다. 그리고 욕망과 감정으로 야기된 심리적,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명상을 합니다. 따라서 여기에는 강한 에고가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그들은 나를 중심으로 하는 원근법적인 사고, 자기중심의 명상을 합니다.
동양의 명상은 나 중심에서 벗어나 道의 관점(以道觀之)에 서기 위한 명상을 합니다. 따라서 마음을 비워 忘我, 無我, 無心의 경지까지 갈 수 있도록 좁은 자아의 외연을 끝없이 넓혀 物我一如, 個全一如의 상태를 추구합니다. 상대의 입장, 대상의 입장, 진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진리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 동양의 명상입니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금동미륵사유반가상이나 신라인이 만든 것으로 여겨지는 일본의 국보 1호인 목조미륵사유반가상은 모두 명상을 하는 미륵부처님입니다. 그런데 왜 사유반가상, 사유하는 반가상이라는 말을 썼을까요? 사유하다는 말은 생각하다는 의미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思惟란 생각의 의미보다는 마음(心)의 밭(田)을 가꾸는 心田耕作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정서, 생각 등을 내포하고 있는 마음의 밭을 닦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마음을 닦는다는 말은 정신을 하나로 집중하여 고요한 상태가 지속되게 함으로써 진리의 실체가 지극히 고요하고 맑게 정화된 명경지수와 같은 내 마음에 드러나게 하는 방식의 수련법입니다.
그렇다면 국선도 명상, 호흡명상인 좌사법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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